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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설교 2024

치유하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10:46~5)

치유하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10:46~52(신약 p.72)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할렐루야~ 오직 예수님,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세대입니다. 새롭게 시작한 한 학기의 첫 주를 잘 맞이하고, 보내고 오셨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의 자리에서 항상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여리고라는 곳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여리고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신 곳이 여리고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함께 7일간 침묵으로 성을 돌아 무너뜨린 곳이 여리고입니다. 여리고 성은 예루살렘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보면 자주 등장하게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모여 들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여리고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릅니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르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미로 부르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말은 그 지역 출신이라는 말입니다. 나사렛은 겨우 30여 가구, 100~200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살던 시골의 작은 동네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의 집 사정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수많은 예수들과 구별하려고 나사렛이라는 말을 붙였는데 유대의 문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한 정보 이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나사렛 출신이래~ 말 안해도 알지?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1:46) 그 쪼그만 동네에서 뭐 위대한 인물이 나오겠어?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부를 때는 아 그 나사렛 출신이야~~~(대강 알겠다) 이렇게 말했을거 같습니다.

그 작은 나사렛 출신인 예수라는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여리고에 왔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구경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둘러싸고 쫓아 옵니다.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는 정보로 인식한다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거나, 예배하거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보이는 것만 보는 한계에 갇혀서 더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그저 역사 속의 한 사람으로 여긴다면 예수님의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반면에 예수님을 전혀 다른 호칭으로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맹인 거지였습니다.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병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 귀신을 쫓아내시는 예수님, 또 하나님의 말씀도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 그분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 아버지는 목수시고... 그런데 그분은 원래 나사렛 사람이 아니라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 바디매오는 구걸하기 위해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신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웅성웅성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할 때 그의 머릿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 중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으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어디 한 둘 입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할 때 그 말이 메시아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모든 압제에서 구원해 낼 구원자에게만 합당한 호칭이 바로 다윗의 자손입니다. 놀랍게도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표현 중에 정확하게 예수님을 누구라고 불러야 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눈이 보이지 않는 바디매오는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바디매오는 매우 간절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예수님이 뭐라도 하실까 싶어 모두 예수님께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절실히 만나고 싶은 바디매오는 간절히 예수님을 부릅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면박을 주어도, 분명한 목적이 있는 바디매오는 잠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간절히 예수님을 부르는 걸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의 어떤 유명인이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시는 다윗의 후손,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결국 예수님께서 그를 가까이 부르셨고,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보시고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눈이 떠져 다시 보게 된 바디매오는 더 이상 거지로 살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가 아닌 다윗의 자손으로 부른 행동이 그의 인생에 기적을 가져오고, 치유를 가져오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해 준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고백은 두 가지로 귀결될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로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성인으로, 위대한 인물로만 대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다윗의 자손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아요,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믿는 마음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눈초리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잠잠하지 않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을 뿌만 아니라, 스스로는 자신의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어쩌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삶은 이 바디매오와 같은 상황일 지도 모릅니다. 내 진로는 어떻게 될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이번 학기는 이전 학기보다 더 잘해 낼 수 있을까? 원하는 직장이나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어떠한 문제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당면한 모든 문제,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되어 주실 예수님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바디매오를 불러 주신 것처럼 우리를 가까이 불러 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52)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가라고 명하시기 전에, 이미 그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간절히 예수님을 불렀을 때 주님은 이미 그를 치유하기로 결정하시고 그를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그의 간절한 바람과 그의 간절한 외침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안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도 자신을 치유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 응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감사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52절에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보지 못하던 그가 보게 되고 그 인생은 이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께 드리는 감사는 곧, 바로, 즉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자신처럼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예수님을 부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예수님의 손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며 자신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간절히 고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가장 어렵고 절실한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간절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예수님을 뒤를 따라 이 땅에서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치유를 경험하고 회복 될수 있도록 손 내미는 예수 세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양: 전심으로

 

함께기도:

1. 예수님을 역사적 인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심을 믿고 확신하게 하소서.

2.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