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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설교 2024

살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행 16:25~34)

살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16:25~34(신약 193)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할렐루야~ 오직 예수님~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너는 참 귀한 사람이야~’, ‘나도 참 귀한 사람이다

오늘 예배에 나오신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예배와 만남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의 분류상 역사서에 해당합니다. 복음서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면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성령께서 사도들과 함께 세워 가시는 교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소개하는 사람은 바울과 실라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시아 지역에 전도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표현했습니다.)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려야만 하나님의 뜻인 것은 아닙니다. 잘 안될때도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던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하는 것을 보고 그 환상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라 믿고 마게도냐로 걸음을 돌립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은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도 전하고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모함을 받고 고발을 당하여 잡혀가게 됩니다.

잡혀간 바울과 실라는 옷을 벗기우고 매를 맞았습니다.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히고 발에 차꼬를 채웠습니다. 이 차꼬는 발을 넓게 벌려 고정시켜 고통을 주는 로마의 고문기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마게도니야의 빌립보에 와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모함을 받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고문기계에 묶여 고통 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입니까?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옥에 있는 죄수들을 관리감독하는 간수입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로마의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만약에 죄수가 도망을 가게 되면 이 죄수의 형벌을 간수가 대신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엄벌에 처하게 됩니다. 오늘 옥에는 금방 들어와 아파 고통하는 죄수 바울과 실라가 있습니다. 다른 죄수들도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렸습니다. 묶여있던 사람들이 풀려났습니다. 이 간수는 자다가 지진 때문에 깼습니다. 그리고 옥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갔나보다 어떻게 하지..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

 

이 두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보니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누구의 상황이 더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25절에 보니까 옥에 갇혀 이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합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람이 너무 슬프면 노래를 못한다고 합니다. 매맞고 고통으로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다니요. 이 모든 어려운 상황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다 생긴 것인데 인간적인 억울함을 호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든 상황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한편 이 간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의 선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자결을 생각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죄수들을 잃었으니 죄인처럼 고통받다 죽느니 자결하여 고통을 면하는게 났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억울하고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가져야 할까요?

옛날 어르신들은 기도 머리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렇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과 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을 전혀 전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 따르면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간수처럼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생명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습니까?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죽으려는 어른이 어린 자녀들을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한때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생명의 주인이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실진대 자신의 자녀라 할지라도 그를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면 그것은 동반 자살이 아니라 명백한 살인입니다.

같은 논리로 설명하자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신데 내 마음대로 내 생명을 끊는다면 그것은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요, 나 자신에 대한 살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생명도 타인의 생명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생명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는 간수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하나님을 믿는 바울은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크게 소리를 질러 그의 죽음을 막습니다.

죄수들과 바울이 아직 옥 안에 있다는 것을 안 간수는 곧바로 옥 안으로 불을 들고 들어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묻습니다.

바울의 대답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입니다.

그리고 간수는 그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씻어주고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크게 기뻐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전파를 위해 빌립보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나아갔습니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났지만 어떠한 상황이든지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마터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뻔한 사람을 구하게 되고 그 사람을 구할 뿐만 아니라 그와 그 가족이 모두 하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돕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항상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귀한 사명에 주목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생명이 위급한 중요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구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나 스스로 라면 내 문제에 눌려 도망가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의 생명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혹여 생명의 갈림길에서 좌절하고 낙망하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바울처럼 멈추라고 힘을 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직면한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은 이 간수와 그 간수의 집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거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오늘 나의 존재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보내심일 수 있습니다.

 

이지선교수 이야기

이지선이라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를 다니는 예쁘고 똑똑한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2000년에 730일에 오빠와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음주운전자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 사고로 오빠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차에 난 화재로 이지선 자매는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화상의 정도가 너무 커서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화상의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화상을 당하면 열에 의해 피부가 녹아 내리고, 녹아 내린 피부가 아문 후에도 계속해서 그 뜨거운 열기를 느끼게 되고, 살이 서로 당기면서 가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화상의 정도가 심해서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어야 했고 녹아내린 피부로는 생활이 안돼서 그 피부를 다 뜯어내고 속살을 들어내고 그 생살을 소독하는 지옥같은 치료의 과정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할만큼 보는이 마저 괴로운 형상이었고 차라리 죽는게 쉽지 않을까 하는 고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얼마나 살수 있을까? 그녀가 삶을 포기하지 않을까?하며 그녀의 삶에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이런 그녀를 견디게 해 준 것은 가족들과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예뻤던 얼굴은 괴물처럼 일그러졌고, 녹아 굳어진 입으로는 제대로 말하기도 힘든 그녀였지만 가족들은 그녀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숨을 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사고 전에 대했던 것처럼 똑같이 대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친구들도 병실을 찾아와 평소와 같이 수다 떨며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상황, 견딜 수 없는 상실감 속에서 혹 무너져 내리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들이었을 텐데 그녀를 그 지옥에 건져 준 것은 가족과 친구들의 따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녀를 동정한 것이 아니라 추하게 변해버린 그녀를 있는 그대로 대해 준 평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이지선 자매는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음주운전 사고를 당했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사고를 만났다고 표현합니다. 사고를 당했다는 피동적인 상황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고, 이미 만난 사고이니 이 만난 상황을 잘 극복해 보자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오빠는 730일을 이지선교수의 제2이 생일로 정하고 지금까지 그 날이 되면 생일을 축하하는 문자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이제는 하늘의 부름을 받은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을 만나 미국으로의 유학을 제안받고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학력은...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학사)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재활상담학과/석사)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석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박사)의 학위를 받았습니다. 귀국하여 한동대에서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모교인 이화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놓인 상황이 이지선 자매와 같은 암흑의 상황이라면 그 상황 속에서도 그녀를 존귀하게 여기신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명 한명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이 오늘도 나를 귀하게 여기심을 기억해 내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놓인 상황이 이지선자매의 가족과 친구들이 만나는 상황이라면 죽음 같은 어려움을 만난 나의 벗에게 손을 내밀고 사랑을 내미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위해 나를 보내셨음을 기억해 내시기 바랍니다.

 

기도

한번이라도 죽고 싶다. 감정적으로, 구체적으로 그러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 시간 내 생명의 주인을 나라고 생각한 죄를 회개하기 바랍니다. 나를 마음대로 죽이고 싶어 한 나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내게 주신 생명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저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제가 깨닫게 해 주옵소서. 이제 회개하오니 주님이 내 마음의 죽음의 그림자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생명을 귀히 여기며 그 귀한 생명을 가치있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내 주변에 내가 다가가야 하는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떻게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도울 수 있습니까? 주님 제게 지혜를 주셔서 주님이 간수를 위해 바울을 보내심같이 나를 보내사 그 친구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쁨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귀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기를 원하심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처럼 저도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좌절하고 절망한 누군가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되어 그를 위로하고 사랑하고 세워주는 사람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나로 인하여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일이 생겨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